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네프르-카르파티아 공세 (문단 편집) == 결과 == 공세의 결과, 독일군은 폴란드와 루마니아로 밀려났다. 중부집단군과 북우크라이나 집단군 사이에는 거대한 습지대가 있어 전선이 사실상 단절되어 버렸고 여기엔 중부집단군의 2군이 배치되었다. 북우크라이나 집단군과 남우크라이나 집단군 사이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어 역시 전선이 단절되었고 헝가리 1군이 산맥의 방어를 담당하게 된다. 북우크라이나 집단군은 폴란드 동남부 [[갈리치아]]를 담당했고 남우크라이나 집단군은 루마니아를 담당하게 되었다. 카르파티아를 기준으로 두 집단군이 단절되면서 남우크라이나 집단군으로 향하는 보급품은 발칸반도와 루마니아의 철도를 통해야 했으며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때문에 보급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4개월 간 양측의 인명 피해는 심각했고 독일군의 경우 10개 사단과 1개 여단은 괴멸되어 해체되었다. 7개 보병사단과 1개 공수사단, 2개 기갑척탄병 사단은 재편을 위해 서부로 옮겨졌다. 나머지 사단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A 집단군의 경우 39개 사단중 18개 사단이 전투단이 되어 있었다.[* 사단의 구실을 할 전력이 안 되어 몇 개 사단을 합쳐 운용했다.] 독일군은 최선을 다하면서 싸웠음에도 히틀러에 의해 수많은 사령관들이 직위해제되고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히틀러는 서부전구의 전력을 강화하길 원했고 이를 위해 물자와 인력 및 완편 사단들을 서부에 우선 배치하려 했으나 드네프르-카르파티아 공세는 이런 계획 자체를 망가트렸다. 히틀러조차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남부집단군에 증원을 해야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발칸, 폴란드, 덴마크, 독일 본국과 중부집단군, 북부집단군에서 34개 사단 550,000명, 853대의 전차 및 자주포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 전력으로도 소련군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른 작전에 비해 드네프르 공세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독일군의 예비 전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결과 이어지는 [[바그라티온 작전|하계 공세]]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소련군과 연합군의 큰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